9.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모태 신앙인 이라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봉사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십일조를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며, 하나님을 믿는다고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지요? 성경에 모태 신앙이라는 말은 전혀 없읍니다. 믿음이 좋은 어머님이 교회에 다니다가 임신을 해서 나를 낳아준 것 뿐 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가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믿고 영접 할수가 있는가요? 없읍니다. 태아인 내가 죄를 회개 할수 있나요? 없지요. 주님을 믿는 의지
와 신앙의 고백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그런고로 나는 모태 신앙인 이라고 말 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십일조 헌금을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도 없읍니다. 복음적인 신앙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다 십일조를 했읍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장로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한주에 두번씩 금식하며 율법을 지켰고, 십일조를 착실하게 헌금 함으로 열심히 ϴ 을 믿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그들이 그것 때문에 구원을 받았나요? 아니요! 오히려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주님은 그들 을 저주 하셨습니다. 십일조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Is 백성들이 소유한 모든 것은 ϴ 이 주신 것이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지 시키기 위해서 열에 하나는 ϴ 의 것으로 드리도록 규래를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에 하나를 ϴ 께 드림으로서 나는 ϴ 께 돌아와 ϴ 께 속한 ϴ 의백성이라는 것을 증표로 삼은 것입니다 (말 3:7-9). 십일조를 드림으로서 구원을 받는다는 설명은 복음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복음적인 바른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거듭난 ϴ 의 자녀라면 마땅히 십분의일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ϴ 을 믿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린다? 십일조를 드리면 ϴ 이 축복해 주신다는 고정 관념에 매이면 당신은 종교인이 되는것 입니다. 부활의 생명과 연합되어 있는 믿음
의 사람은 물질에 아글 다글 연연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ϴ 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ϴ 을 믿는다는 그 ϴ 은 어떤 존재인가요? 전능하신분, 모든것
위에 초월하여 계신분, 각 사람에 따라서 또 여러 종교에 따라서 하나님 즉 “god” 이라는 神을 정해놓고 그들의 교리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나름대로 그들이 믿는 ϴ 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 기적과 같은 신앙의 간증들이 그들에게도 있는것 입니다. 그러나 Xan 들은 복음의 핵심이 빠저버린 그들과 같은 종교적인 간증이 되어서는 않되는것 입니다. Xan 들의 신앙은 Jx 를 중심으로한 복음 적인 신앙의 간증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표현이 되어야합니다. 두리 뭉수리로 ϴ 을 믿었다? 예수를 믿었다? 어려울때 ϴ 을 믿으라고 해서 믿었다? 어떻게 믿었든 성령님에 의한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신앙 고백은 여타 종교인들도 그렇게 믿음의 고백을 간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간증속에는 십자가의 5 중적인 복음의 핵심
내용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복음적인 신앙의 본질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또 회개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 인가요? 믿음의 본질적인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것 인가요? ϴ 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 신 그분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인 신앙의 간증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또 우리 Xan 들은 ϴ 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ϴ 이라는 이름이 무엇 이지요? 본래 ϴ 의 이름은 없습니다. 모새가 ϴ 의 부르심을 받고 떨기나무 불꽃 앞에 서있을때 ϴ 은 모세에게 그 이름에 대해서 무엇이라 했지요? “나는 스스로 있는자” 라고 했읍니다.
그래서 히브리 인들은 다양하게 이름을 지어 부른 것이 “여호와” “야외” “아도나이”,,, 등 등으로 불렀읍니다. 그것은 Is 백성들이 그렇게 부른것 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기록한 곳이 없습니다. 찾아 보십시요. 전부가 다 여호와와 대신에 “The Lord” 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절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신약에는 여호와라는 개념이 전혀 없읍니다. 요한 복음 17 장에서 주님이 ϴ 께 기도하실때 무엇이라 기도 하셨나요? 하나님 이라고 부르셨나요? 아니요. 여호와라고 부르셨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신약에 와서는 여호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읍니다. 우리는 유대교를 믿는 신자들이 아님니다. 구약은 유대교의 역사 입니다. 우리는 유대교 역사 속에서 메시야로 약속하신 Jx 를 믿는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Jx 를 믿는 기독교인 이지 유대교인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구약의 구속사적인 변천 과정이 신약에 와서 어떻게 집약하고 정리가 되었는지 우리 Ibc 의 모든 믿음의식구들은 확실하게 알고, Jx 의 증언자가 되기를 간절히 권면 합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大 轉換點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ϴ 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게 啓示해 주셨고, 분명하게 정리해 주셨읍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믿음의 눈을 확짝 열고 주님이 기도하신 내용들을 영감있게 자세히 보고 또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말씀은 우리 주님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 입니다. 그냥 읽어 내려 가지 말고 천천히 깊이있게 관찰하면서 보십시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v.5)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여! 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라는 말을 쓰지않고, 아버지와 함께 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뭐라고요? “스스로 있는 있는 자” 라고했습니다. 스스로 계신 그분이 주님께 주신 자들, 곧 거듭난 자녀들인 당신과 나를 주 Jx 에게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하나가 된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 내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그분을” 계시 하셨다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알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당신에게 영감있게 깨닫도록 알려 주셨다는것 입니다. 다음 말씀을 보십시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 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함으로 인함이 이니이다” (v.14) 또 아버지의 말씀을 누구에게 주셨다는 것인가요? 살려 내시는 생명의 말씀을 아버지의 자녀된 당신에게 또 나에게 주셨다는것 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感이 오는가요? 어떠한 영감이 오는지 다음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해 보십시요. 요한 복음 1:1-4 에 있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ϴ 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ϴ 이리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태초부터 있었든 그 말씀이 ϴ 과 함께 계셨는데 바로 그 말씀이 곧 ϴ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읍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없느니라” (요 14:6)
이 말씀들이 나와 어떤 깊은 관계가 있는지 나에게 영감이 있는 깨달음을 주시나요? 계속해서 v.14 에서 주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당신도 나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해서 그렇게 되었지요? 거룩하신 영으로 거듭남으로서, 아버지의 자녀가 됨으로 서 나도 당신도,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지 않고 “아버지” 라고 부르는 특권을 소유하게 된 실상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나와 여러분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세상적인 불신앙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적인것, 인간적인것, 윤리 도덕적인것, 그것을 중심으로 말하지 말고 오직 Jx 를 믿음으로 거듭난 ϴ 아버지의 자녀답게 Jx 의 증언자가 되라는 것 아닌가요? 또 다음 말씀을 보십시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사옵나이다” ( v.16) 주님은 무엇이라고 강조하고 있나요? 주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누구인가요? 거듭나서 아버지의 아들되고 딸된 당신과 내가 아닌가요? 어떻게 해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고 했나요?
Jx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저주의 십자가에서 나의 죄때문에 죽으심으로 내죄를 속량해 주셨고, 약속 하신대로 성령님 보내주셔서 나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철저히 통회 자백하며 회개함으로 거듭나게 하사, 나와 당신은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었기에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니다. 주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또한 아버지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하지 않고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 성별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별 되었다는 것 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신 주님이 내 안에 임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도 당신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는 이 실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타 종교에서 그들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종교는 하나도 없읍니다. 오직 주 Jx 에게 속한 믿음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아버지고 부르는 특권을 주신것 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말씀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v.21) 참으로 氣가 막힐 정도로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말씀 아닌가요? 主 Jx 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주님안에 계신것 같이, 그들이 누구인가요? 거듭나서 아들 딸이 된 당신과 내가 아닌가요? 그런데 주님은 나와 여러분이 어떻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하시지요?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라고
했읍니다. 성부, 성자, 성령 안에 있음으로 인해서 무엇을 하기 위함이라고요? 불신의 세상으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나요? 모든 불신의 영들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어떻게 한다고요?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신것을 인정하도록 위해서 기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리고 누가 그렇게 믿도록 하는가요 주님과 하나된 당신과 나로 하여금 세상이 믿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도 하신것 입니다. 이 말씀에 어떤 도전을 받는가요? 또 다음 말씀은 뭐라고 하셨나요?
“내가 그들 안에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로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함이로 소이다” (v.23)
누가 누구 안에 있다고 했나요? 그들이 누구인가요? 거듭난 당신과 내가 아닌가요? 누구 안에 있다고요?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였나요? 거듭남으로서 주님은 내안에 나는 주님안에 계신것 이라면 또 아버지가 주님 안에 있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인가요?
나도 아버지 안에 있다는것 아닌가요? 이 실상이 보여 지는가요? 그런데 어떻게 하기위해서 하나가 된다고 본문은 강조하고 있지요?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하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기위함 이라고 했읍니다. 의미 심장한 말씀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도전이 되는 말씀이 아닌가요? 그러니까, 나와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 하겠습니까? 나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
의 언어와 행실의 삶이 어떻게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읍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는 각성하고 깨어서 말씀과 기도에 몰입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르게 알고바르게 믿도록 합 시다. 우리 Ibc 에 속해있는 모든 지체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살려내는 Holy Scripture, 생명의 말씀과 합일의 실제가 되도록 영감있게 날마다 말씀을 상고 함으로서 실력이 있고 영력이 있는 Jx 의 증언자로서, 또 사역자로 세워질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